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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의 법률 문서를 번역하다 보면 "Without prejudice"라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직역하면 그 의미는 "편견 없이" 와 비슷해집니다.


편견이 없다는 말을 왜 굳이 법률 문서에 포함시키는 것일까요?


영미권에서는 이를 "Without Prejudice(WP)" principle, 즉 WP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구가 쓰여있다는 것은, 향후 법정에서의 소송으로 이어지더라도, 해당 문서가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체 언제 이러한 고지를 할 필요가 생길까요?


예를 들어 A가 B에게 100만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둘 사이에 분쟁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B는 A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를 설명하며, 80만원으로 합의를 보자는 '제안'을 '편견 없는(Without prejudice)' 서신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 경우 WP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만약 이 문제가 법정에 가게 되더라도 A는 판사에게 해당 서신을 제출하면서 B가 자신에게 이러한 제안을 해왔다며 B의 약점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B 또한 자기가 보낸 서신을 가지고 자신의 채무는 원래 80만원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즉, 두 법적 주체간에 상업적인 분쟁이 있고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서로 있을 때내가 하는 제안은 분쟁 해결을 위한 '제안'일 뿐이며, 내가 이러한 진술이나 당신의 답변을 가지고 법정에서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는 '편견'을 갖고 읽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분쟁이 있는 두 주체의 사이가 아직 완전히 틀어지지는 않은 상황에서, 법정에 가지 않고 서로의 오해를 풀고 사안을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할 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번역은 언어의 '변환'이 아닌 '다시 쓰기'의 과정이고, 어떤 경우에든 번역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WP원칙은 한국에 대응하는 기존의 표현이 따로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편견 없이" 라고 직역해서 사용한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해당 표현이 사용된 목적을 살려서, 

"이 서신의 내용은 분쟁의 원만한 해결을 목적으로 하며, 법정에서의 근거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라는 고지사항으로 대체했습니다.


보다 좋은 번역이 있거나, 기존의 법조문 번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표현을 알고계신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저의 첫 포스팅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