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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 감독 : 윤성현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사건의 발단은 기태로부터 시작한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기태의 죽음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 OECD 국가중 몇 위라느니-같은 시사적/수치적 통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아이가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란다. 언론이나 신문에서는 누군가의 자살, 특히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자살을 다룰 때에는 이들이 교육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을 짓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물론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올라가다가 심각한 낙오사항을 발견하고선 그 자리에서 자신을 끝내버리는 나약한 이도 있겠지. 하지만 피라미드 꼭대기를 바라보며 한걸음씩 걸음을 옮기는 결기를 가진 하이애나 대부분은 절대 그따위 것에 절망하지 않는다. 네 발가락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이들이 가진 특징이요, 강인함이다. 사설이 길었다. 위 문단의 요지는 언론은 학생들의 자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도 거쳤던 학창시절일텐데 저따위로 기사를 쓰는 것은 그냥 대충 월급 루팡을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이러한 일에 관심이 없어서이다. 기태는 조금은 다른 피라미드에 속해 있다. 그 피라미드는 매우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 모래성 같은 피라미드이다. 이 모래성 피라미드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인 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을 지금 당장 발휘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태는 그 모래성과 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서 주목을 받으며 마치 파라오와 같은 권력을 누리며 아이들(백희의 표현으로는 애새끼들)의 숭앙을 받으며 살아가는 권력가이다. 그런데, 그런 기태가 죽음을 선택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기태가, 기태의 등장만으로도 홍해가 갈라지듯 복도의 애새끼들이 양쪽으로 도열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는 그런 파라오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자살을 한 것일까? 기태는 엄마가 없다. 이혼인지, 사별인지, 떠남인지, 구체적 이별사유가 무엇인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지만, 기태의 콤플렉스가 엄마라는 것을 영화는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고등학생인 파라오 기태는 지금은 남 부러울 것이 없지만, 중학생일 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소심했고, 어두웠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기태를 알아준 친구가 동윤이다. 동윤이를 통해 기태는 일어설 수 있었고, 동윤이와 친구가 됨으로써 기태는 고등학교에서 소위 "일짱"까지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글쎄, 동윤이가 기태의 엄마 역까지 맡았다고 해석하면 무리한 해석일까? 무리한 해석이다. 다른애들은 하교하면 엄마가 집에서 밥 해주고 학원 가라고 잔소리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등짝 스매시 날리고 등교 늦지 말라고 발길질 하지만, 기태는 집에 가면 혼자 밥 해먹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고-왜 안깨웠냐고 짜증부릴 엄마가 없다. 동윤이가 이러한 기태의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없기에 기태의 엄마 역할을 했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그러나 동윤이와 기태가 나눈 대화를 통해 우리는 기태가 동윤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윤이가 기태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모든 것을 평정한 기태에게 동윤이가 "주목받으니까 좋냐?"고, "좋지, 그럼(ㅋㅋㅋㅋㅋ)"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중요한 말을 한다. "근데 다른거 다 없어져도 너(동윤이)만 있으면 돼. 그거면 돼. 다른거 다 없어져도 나한테 너만 있으면 돼. 네가 나 알아줬잖아. 그거면 돼." 그렇다. 엄마의 부재로 공허했던 기태의 빈 마음을 채워주었던 것은 동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태의 빈 마음을 꽉 채워주었기에, 동윤이가 다시 기태의 마음을 비워내었을 때, 기태는 살아갈 이유를 잃었고, 자신이 할 일을 해냈다. 기태의 선택에 대해, 기태를 그렇게 만든 동윤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다. 사춘기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낸 감독의 예민하고도 핵심을 짚어낸 예리함이 아마도 계속해서 나를 끌어냈나보다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중에 또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그 때 또 보고 또 재밌는 얘기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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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태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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